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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6권
정조실록이 출간되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의의, 매력, 장점은
크게 두가지로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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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엮어서 고증에 충실한 당대의 복색을 볼 수 있으며,
또한 시사만화로 단련된 작가의 역량으로 역사상의 인물에게 얼굴을 부여했다는 점.
즉, '만화'로서의 장점이다.

또 다른 의의는 역사를 다룬 저서 자체의 미덕.
때로는 과격할 정도로 통설과는 다르되 그 근거가 확실한 새 견해를 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 시리즈가 완간된후에 제대로 다룰 생각이다.
그렇다.
이 시리즈는 20권 완결 예정이고 2010년에 완결될거란 계획이었다.
물론 참고해야할 사서도 많고 새 견해를 펴자면 여러 우려도 있어
숙고를 거듭하다보면 자연히 저작 기간이 길어지는 거야 어쩔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매권 꼬박꼬박 출간날에 구입하는 독자의 입장으로선 참으로, 참으로.......
으음.

아니.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정조 실록이야기로 돌아가자. 

정조는 후대에 인기가 높은 왕으로 많은 역사서이 쓰여졌고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사극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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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품들에서 정조는 기울어가는 조선을 개혁하려했으나 기득권층의 반대와 음모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스러져간 비운의 개혁군주로 다루어 진다. 
정조의 편에는 젊은 개혁파, 남인을 비롯한 시파가 서고.
그 반대편에는 사도세자를 죽인 서인, 정순왕후등의 벽파가 서있다.

이리하여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려는 주인공들과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이를 막으려는 기득권층 악당들간의 싸움으로 그려진다.

물론 그렇게 주인공이 있고 대적자가 있으며 선악 진영이 나뉜 가운데 각종 원형(archetype)을 배치하는 것이 보기도 좋고 재미도 있겠지만,
그것이 실제 역사와 부합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6권은 기존 통설을 또 한번 반대한다.

이 책이 밝히는, 아니 재조명하는 사실중 하나는 정조가 주자의 신봉자라는 것이다.
본래 성리학 자체가 주자학이며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왕이 주자를 공부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정조는 그것을 넘어섰다.
왕이 되기 이전부터 주자어류의 선집들을 펴내는 등.
주자 관련 저작을 여럿 했음은 물론이오 왕 자신이 그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것은 그가 어떤 사상을 갖고 있었으며 어떤 이상을 갖고 있었는지 알수있는,
간단히 말해 조선의 왕이 조선이 어떤 나라가 되길 바랬는지 알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는 것!
이 어찌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수가 있는가!

그런데 정조를 비운의 개혁군주로 보는 작품에서는 이런 면이 누락되어있거나,
그 의미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그야 성리학 자체가 현대의 시각에서 보면 고리타분한 소리이고
사실 정조의 시대에도 이미 현실에 뒤처진 학문인데
그것을 신봉하다니 개혁군주의 이미지에 안맞지 않은가?

그렇다. 이 책은 정조를 비운의 개혁군주로 보는 시각에 반대하는 것이다.

정조의 개혁은 미래의 새로운 길을 여는 개혁이 아니라
과거의 제도에 끼인 부정과 폐해를 닦아내고 돌아가는 보수적 개혁이었으며
정조의 비운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신원을 이루지 못한 비운이지 
자신이 바라던 개혁을 하지 못한 비운이 아니란 주장.

이것은 13권에서 효종의 '북벌'이 진심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을때처럼 논란이 될 것이고
여러 반론을 살 것이다.

그러나 박시백은 때로는 재미를 포기하고 때로는 반론을 감수하면서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사관이 주장한 것이 아니라 그 사관들이 기록해놓은 인물들의 언행들에 충실하다.

마사가 꽤 오래전부터 주장했지만 각종 제도 법규와 그 기반이 되는 도덕, 윤리관또한
과학기술과 마찬가지로 인류가 만들고 발전시켜 온 것이다.

지금 상식적인 주장, 행동중 많은 것이 후대의 눈으론 악하고 비열하게 보일 것이며
지금 과격하고 괜히 문제를 만든다 여겨지는 주장중 많은 것이 후대엔 상식이 될 것이다.
 
이 당연한 흐름은 역사 저작에 이르면 문제를 만든다.
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결국 과거의 해석이다.
과거의 가치관속에 살던 과거의 사람을 현재의 가치관으로 재단하려다보면 다른 틀에 끼워맞추는 왜곡이 될 것이고.
그렇다고 현재의 가치관에 재갈을 물리면 대체 무엇때문에 역사를 다루는가?
그리하여 둘 사이에 적절한 위치를 잡는 것은 역사관련 저작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 점에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존중하며 해석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위치를 잡았으며 조선사가 더욱 풍성해지는데 일조를 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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