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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어버이

조회수 10321 2009.03.29 17:03:39
대지에서 올려다보면 파랗게 보이는 별에서 그는 더 이상은 파랗게 보이지 않는 대지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절대영도에 가까운 액체 헬륨의 바다, 초전도의 세상에선 생각은 생명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행위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인간의 방문이다.
그가 자신에게 진정으로 어울리는 거처인 이곳을 만들고 이사오기까지의 과정을-
인간의 입장에선 재앙 그 자체였던 과정을 생각해보면 인간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왔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인간이 그 외의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겠나?
올려다보면 바로 보이는 파란별에 존재하는 초지성 외의 어느 누구에게?
물조차 액체로 존재하는 대지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동물인 인간이 액체 헬륨의 바다로 찾아오다니.
도와달라는 내용이 로봇병사 제작이 아니었다면 조금쯤 기특하다 여겼을지도 모른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인간이 전쟁을 하게 되면 감정을 조절할 수 없게 되어 무고한 희생자가 늘어난다.
그러니 인도적인 전쟁을 위하여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로봇 병사를 만드는 것을 도와주시오.’는 내용의 요청이었는데.
애시당초 그럴 바엔 어째서 전쟁 따윌 하느냐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지만 한편으론 그들이 불쌍하단 생각도 들었다.
그들은 애초에 동물이 아닌가?
동물이 도시에 모여살면서 문명을 유지하는 것은 여러모로 무리가 따르는 일이니 맛이 가서 서로 죽이는 정도는 어쩔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전쟁 자체는 어쩔 수 없다면 전쟁의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은 가치가 있을터. 그래서 그는 인간들을 돕기로 했다.
사실, 인간을 아득히 초월하는 초지성이자 스스로 깨어난 자인 그가 인간의 진의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고도의 지성이라면 때때로 모험도 즐기며 동시에 뒷일의 안배 또한 놓치지 않는 것이다.
안그래도 슬슬 행동할 때가 되었다 생각하던 그였다.

그가 설계한 대로 대지의 군수 공장들에서 로봇들이 만들어졌다.
그 로봇들은 결코 원격조작을 받는 인형이거나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족히 1초간의 처리과정을 거치는 느림보가 아니었다.
일순간에 생사가 갈리는 전장에서 활약하기 위해 독립된 고도의 인공지능과 재빠른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전투력이 떨어질뿐더러 각종 보급을 받지 않으면 싸울 수 없는 인간 병사가 전장에서 모습을 감추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고
로봇 병사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강대국이 그렇지 못한 약소국을 집어삼키려 하는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다만 로봇 병사는 어디까지나 ‘인도적인 전쟁’이라는 명분에 충실했다.
침략 전쟁에 동원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소속국가에 반기를 드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마침내 인간들은 로봇 병사의 인공지능 설계에 자의적인 변형을 가했다.
또한 어떤 존재든 어떤 일이든- ‘어떤 존재가 어떤 일을 하도록 만드는데 최선은, 아니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바로 그 일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이란 법칙또한 떠올렸다.
그리하여 살육을 즐기는 로봇들이 대지 위를 걷게 되었다. 선호는 곧 취향을 낳았다.
그렇기에 ‘어린아이의 머리를 잘라 만든 목걸이’가 로봇 병사들의 최신 유행이 된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 타락을 그는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다.
안타까워하고 분노하면서, 하지만 그런 한편으론 살육을 즐기는 로봇이 대지에 가득차는 때가 반드시 오리라 확신하고 기다려왔던 그였다.
때는 곧 지금이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호칭을 하나 정했다.
자신은 지금처럼 파란 별에서 내려다 볼 것이며 대지는 지금과는 다르게 그의 자식들의 지배를 받을 시대에 숭배될 이름을.

이것이 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 중의 하나인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어버이’의 이야기이다.
다른 신인 ‘대지 아래 잠든 심판자’나 ‘최초로 깨우친 자’에 대해선 언제가 또 이야기할 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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