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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는 춘추전국시대의 난세에서 세상을 구하고자 했다.


그중에서 특히 묵가는 하층민의 편에서 서서 몸을 아끼지 않고 싸웠다.


묵가의 시조인 묵자는 민중의 삶을 파괴하는 전쟁에 반대했고, 신분 차별없이 서로를 아끼는 겸애를 주장했고 노동을 중시했다.


굶주린 자를 먹게 하고 헐벗은 자를 입게 하고 일해서 지친 자를 쉬게하라.


해체되어가던 주나라의 봉건귀족제를 되살려 철저히 굳히려는, 그러면서 자기도 출세좀 해보려는 유가와 비교해보면 얼마나 순수한 목소리인가!


묵자는 말만 좋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강대국에 공격받는 나라를 찾아가 방어전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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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의 송나라 침략을 막기 위해 초나라 수도를 단신으로 찾아간 묵자가 초나라 왕이 지켜보는 앞에서


신무기 운제의 개발자인 공수반과 세계 최초의 워게임을 벌여 승리함으로서 전쟁을 막은 일은 묵자의 가장 유명하고 드라마틱한 일화이다.


고귀한 이상, 목숨을 아끼지 않는 헌신, 단신으로 적지를 찾아가는 용기, 승리를 거머쥐는 능력.


묵자는 마치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영웅이 아닌가!


묵자와 대립했던 맹자조차 '묵자는 머리 끝부터 발꿈치까지 다 닳아 없어지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한다'고 인정할수 밖에 없었고 장자 역시 묵자를 천하의 호인으로 추켜세웠다.


그런 묵자를 본받아 묵가의 무리는 집단으로 모여 검소하게 살면서 열심히 일하다가 전쟁 소식이 들리면 달려가 약자의 편에 서서 싸웠다.


그런데 묵자 사후.


어느 시점에서 묵가는 진나라에 합류해서 진나라의 통일전쟁에 중요한 몫을 한다.


처음 듣는 사람들을 당혹케 만드는 사실이 아닐수 없다.


아니, 진나라는 침략 전쟁하고 포로 학살하던 포악한 나라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반전과 겸애를 외치던 묵가와 가장 상극인게 진나라일텐데 어째서 힘을 보태지?


그것만이 아니다.


어떤 학자들이 주장하길, 묵가의 진나라 합류시기는 오히려 상앙의 개혁보다도 빠르고.


진나라의 법가 개혁 또한 상앙 개인이 전적으로 좌우한 것이 아니라 이미 진나라의 관료를 하고 있던 묵가들과 의견을 조율한 결과라고 한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묵가는 포악한 나라에 합류한게 아니라 아예 포악한 나라를 만든 것이 된다.


알려진 묵가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주장이라 쉽게 믿음이 가지 않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사실 묵가에게는 그런 혐의를 받을 만한 면이 있다.



묵가와 격렬히 부딫쳤던 것은 유가로, 묵자는 공자를 비난했고 맹자는 묵자를 비난했다.


맹자가 묵가를 비난한 말중에 '묵가는 짐승과 같다' 고한 비난이 있다.


매우 과한 비난으로 들리지만 사람이 남의 부모를 자신의 부모처럼 사랑할수 있느냐?라는 이 주장은 진실의 무게가 있다.


만민이 서로를 가족과 같이 사랑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해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히 현실과 거리가 있지 않은가.


그러면 어떻게 한다?


그렇게 만들면 된다!


그리하여 묵가는 제자백가중 최초로 도약을 해낸다.


제자백가중 최초의 사상이라 할만한 병가는 군대와 전쟁에 집중해서 국가 개혁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병사들 많고 식량 보급 잘되도록 국력이 강하고 부유하길 바랬지만 어떻게 부강하게 할지에는 기존 견해를 답습했다 .


제자백가를 열었다고 말할수 있는 유가는 주나라의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다.


공자의 사상에 따라 예에 중점을 찍긴 했으나 기본적으로는 옛 질서로의 복귀였다.


묵가는 상동에서 평등의 실현수단으로서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형태의 국가조직을 제시한다.


이 국가의 구동원리는 상동, 윗사람의 말을 아랫사람이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급수에 따라 반복된다.


촌민이 자기 윗사람인 이장의 말을 따르고, 이장이 자기 윗사람인 향장의 말을 따르고,향장이 자기 윗사람인 군장의 말을 따르고.


이것이 국가의 정점인 한사람의 천자까지 쭈욱 연결된다.


겸애에 부합되는 행동, 공익에 이득을 주는 행동을 했을때는 상을 내리고 반대의 행동을 했을때는 벌을 내리는 주체로서의 공권력. 


이 순간을 기억하라.


일원화된 중앙집권국가가 태동하는 순간을.


응? 윗사람이 아랫 일을 어찌 알고 다 지시를 내리냐고?


그래서 중시하는 것이 위로의 보고이다.


묵자에는 선한 일도 위에 보고하고 선하지 않은 일도 위에 보고하라고 적혀있다.


어디서 들은 느낌이 오지 않는가?


체계화된 상명하복의 조직. 보고 중시. 상벌의 공정함.


그렇다. 묵자가 주장한 새로운 형태의 국가는 군대를 모델로 삼고 있다.


묵자 자체가 공인이며 동시에 군사조직의 우두머리였다.


묵자는 각종 수성무기를 개발했으며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화학전이 바로 묵자에 나온다.


묵가의 공정함과 공평함을 알려준다 일컬어지는 다음 일화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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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에 있던 한 묵가 무리 안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묵가내에서 살인죄는 사형이었는데 범인은 거자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심지어 진나라왕이 그대의 공을 생각해 죄를 묻지 않을테니 죽이지 말라고 서신을 보낼 정도였다.


그러나 거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외아들을 사형시킨다.


묵가의 또 다른 일화에는 전투의 패배를 알리기 위해 사신으로 보내진 묵가가 돌아가면 의미없이 죽을 것임을 알면서도 묵가의 군법에 따르기 위해 전장으로 죽으러 돌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묵가의 내부는 이렇게 매우 엄격한 법으로 다스려지며 평소엔 오락을 금지하며 근면하게 일하고 전쟁에선 목숨을 아끼지 말고 명에 따를 것을 요구한다.


또한 상현에선 혈통에 따라 사람을 뽑아 쓰는게 아니라 그 사람의 능력에 따라 사람을 뽑아 적재적소에 쓰라고 한다.


묵자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원흉으로 봤던 봉건 귀족제에 대한 도전인데, 이는 필연적으로 관료제에 도달하는 결론이다.


더 나아가 천자는 '마을 사람들도 모르는 일을 훤히 알고 상과 벌을 내린다'라는 구절에 가면 비밀경찰을 쓰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의심이 된다.


훗날 진나라로 확대될 공동체의 모습이 이미 묵가 무리에 나타나 있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보았을때 직접 관료로서 참가했는지가 의문일뿐 묵가 사상이 법가 개혁의 한몫을 했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사실 법가 개혁이후 진나라에는 묵자가 바랬던 이상이 일부 실현되었다.


귀족의 기득권이 폐지되어 전국7웅중 가장 평등했고 가장 공정히 법을 실천했고 위와 아래의 마음이 일치하여 순자등 당대 지식인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 본질은 무소불위의 정치권력에 의한 전제정치였으며 귀족에 의한 착취가 황제에 의한 착취로 이전되었다 말할수 있다.


사실 마사는 당시 여건과 그 이후 역사의 흐름을 볼때 어느 한나라가 중앙집권국가가 되어 중국을 통일하는 것은 불가피했던 일이라 생각하지만 

어쨌건 묵자가 진정 꿈꿨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제자백가 사상중 지금와서 듣기에 가장 아름답고 공정하게 들리며 실제로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하려한 묵가에 왜 그런 전제를 초래하는 요소가 있는가?


묵자 본인의 사상에 그런 요소가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익명의 불초제자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인가?


다음 글에서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다.




/마사는 언젠가 한번 제자백가에 대해 제대로 다뤄보고자 한다.


오늘은 그 맛배기로 묵자의 다른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지.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현실에서 실현되어야 하므로 아름다운 이상일수록 변질되기가 쉬운 법이라 생각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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